의료진의 법률상 의무-비밀무설금지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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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자의 비밀보호의 취지

의사의 비밀누설금지의무는 형법 및 의료법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317조 제1항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약종상, 조산원, 변호사, 변리사, 계리사, 공증인, 대서업자나 그 직무상 보조자 또는 차등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업무 처리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2만5천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형법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의 관점에서 비밀을 알 수 있는 업종을 열거하여 그 누설행위를 벌하는 방침을 세우고, 의사도 그 일종으로서 비밀누설금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의사의 비밀누설금지의무는 의료행위의 성질 및 목적에서 다른 직업 종사자와는 제한이 필요하다. 즉 의사는 환자의 신뢰없이는 적절한 진료를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에게 상담하여 처치를 받는 것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불이익한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환자는 의사를 신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비밀유지는 의사의 직업윤리로서 당연한 것이고 형법에도 규정되어 있지만 다시 의료법에 규정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료법 제19조는 「의료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령에서 특히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의료, 조산 또는 간호에 있어서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3년이하 또는 3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 비밀누설금지의무를 단순히 윤리적 차원에서 규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여 적정한 의료를 받도록 하는 취지도 포함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환자 개인의 이익과 동시에 국민이 의사를 신뢰할 때 비로소 사회는 의료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공공의 이익 즉 국민의 건강유지, 증진도 보호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사는 지득한 비밀에 관하여 환자를 위하여는 공표해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부작위 의무를 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의사는 그 비밀을 바르게 이용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일반인에 대하여 지는 것이다.

2. 비밀누설금지 의무의 내용

의사가 진료의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은 비밀을 모르는 제3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누설해서는 아니된다. 이것이 현행법상의 비밀누설금지의무의 내용이다.

(1) 비밀

비밀이란 의사가 진료의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말한다. 병의 증상, 병에 감염된 경위 등에 관한 사항에 한정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어디까지를 비밀의 범위로 해야 하는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지만 본인 이외에 부모, 형제와 같이 특정의 작은 집단에게만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본인의 불이익으로 된다고 인정되는 것이면 비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환자본인이 알지 못하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의사의 진단에 의하여 판명된 경우에 그 사실을 타인이 알게 되면 본인에게 불이익이 되리라고 인정되는 한 비밀로 보아야 한다. 환자에게 불이익으로 되지 않는 사실이라도 환자 본인이 누설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경우에도「비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원에 왔는지, 치료비는 무엇으로 지급했는지 등도 남이 아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비밀에 포함된다. 의사의 비밀누설금지의무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를 법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폭넓게 인정하여야 한다.

(2) 누설

「비밀」을 아직 알고 있지 않은 제3자에게 알리는 것을 누설이라고 한다. 「누설」의 방법은 문서에 의하거나 구두에 의하거나를 방법은 불문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비밀이 기재되어 있는 서면을 그대로 방치한 채로 타인에게 열람시키는 경우와 같이 부작위에 의한 것도 포함한다. 제3자는 원래 비밀을 알지 못하는 타인을 말한다. 이 제3자의 범위에 부모형제, 배우자, 자녀가 포함되는가가 문제된다.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응 이들은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의사와 함께 협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고지는 환자의 이익으로 되므로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어 결혼한 여자가 결혼전에 낙태한 경험이 있어 다시 낙태를 하면 임신이 불가능할 수 있을 때 산부인과의사는 부인의 낙태경험에 대한 것을 남편에게도 비밀로 하여야 할 것이다. 비뇨기과에서의 성병감염여부도 부부사이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있다. 또한 형제간의 재산분할 등 친족간이라고 할 지라도 상속문제나 친자관계존부 등 이해관계가 대립할 경우는 형제간도 제3자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현행법상 비밀누설죄의 내용은 위와 같지만 형사사건으로 처리된 실례는 거의 없는 이유로 형벌에 의하여 비밀을 보호할 필요가 인정되느냐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는 경향이 있다. 의사를 비밀누설죄로 고소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민이 의사를 신뢰하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앞으로 환자의 정보가 대량으로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누설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초고속 정보망에 의한 원격진료는 의료기관간 환자 정보의 공유를 전제로 하여야만 그 효과가 있다. 이렇게 정보유출의 가능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비밀누설금지규정의 존재 가치는 더 커질 것이고,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3) 기록열람 등의 비밀누설금지의무

의료법 제20조는 「 ① 의료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령에서 특히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 시키거나 그 기록의 내용탐지에 응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의료인은 동일한 환자의 진료상 필요에 의하여 다른 의료기관에서 그 기록, 임상소견서 및 치료경위서의 열람이나 사본의 송부를 요구할 때 또는 환자가 검사기록 및 방사선필름 등의 사본교부를 요구한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제1항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규정된 조항이다. 의료인은 환자의 동의없이 당해 환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여서는 아니된다. 만약 이를 위반하여 환자로부터 고소가 제기된 경우 동법 제67조에 의하여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산지법은 S병원이 H보험회사로부터 진료비정산에 필요하다고 하면서 교통사고환자의 진료기록부, CT필름 등 사본교부를 요청받고, 환자의 동의없이 교부한 사건에 대하여 「환자의 동의없이 진료기록부를 유출한 것은 의료법 제67조, 제20조 제1항의 환자에 관한 기록열람이나 내용탐지 금지」조항에 위반된다고 하면서 금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일간보사 1997. 7. 18.자 제2159호 6쪽이하). 위 제2항은 1994. 1. 7. 신설되었는 바, 애초의 입법시안은 진료기록일체를 열람, 사본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의사단체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관하여 의사는 진료기록을 보여줄 의무가 없다는 소극설과 의무가 있다는 적극설이 대립하고 있다. 소극설은 의료행위는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치료라는 결과를 향하여 정성들인 주의를 하여 적절한 치료행위의 실시에 노력하여야 할 수단채무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의사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환자의 상태에 맞추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갖고 현대 의료수준에 비추어 적정하다고 인정되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진료채무의 급부내용이며, 설명의무는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료채무의 이행에 부수하는 의무에 지나지 않는 다고 한다. 또한 진료보고의무(민법제683조, 제738조)는 진료채무의 부수적, 형식적인 의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체법상 진료기록부에 대한 환자의 열람청구권은 인정할 수없다고 한다.(권광중, 의료소송의 절차상의 제문제 364쪽 이하, 재판자료집 제27집, 법원행정처, 1985) 이에 대하여 적극설은 진료채무에는 의외의 결과에 이르지 않도록하는 채무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고, 의사는 진료계약에 기하여 실체법상 설명의무를 부담한다. 이 설명의무의 일환으로서 사후적인 경과보고의무(변명의무)가 있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로서 환자에게는 열람청구권이이라는 실체법상 권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설은 진료행위 전에 발생하는 설명의무와 후에 발생하는 변명의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여 구별하고, 변명의무는 일단 사고가 발생한 후, 즉 환자가 의사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요구되는 설명이라고 한다. 따라서 의사는 현대 의료수준에 맞도록 처치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결과가 생겼다, 결과회피는 불가능하였다는 등의 변명의무는 의사의 재량에 맡겨진 것이 아니며, 그 의무의 이행은 진료기록열람의 방법에 의하여 행해져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의 차는 의사의 주의의무위반 사실의 주장, 입증책임을 누가 부담하는가의 문제에 까지 확대된다. 소극설을 취할 때 악결과발생 방지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 즉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에 관하여 환자가 입증하여야 한다.(中野貞一郞 , 의료과오의 절차적 과제 37-38쪽, 법학세미나 1976. 9.) 적극설을 취할 때는 의사에게 과실이 추정되므로 의사가 악결과발생방지를 위하여 모든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한다. 적극설이 타당하다고 본다.(동지 권광중, 위 전게서 368 쪽)

따라서 의료법 제20조의 해석상 환자본인에게는 진료기록부 열람권이 있다고 본다. 위 규정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입법된 것이고, 진료기록은 환자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환자본인에게는 당연히 진료기록의 열람, 복사청구권이 있고 나아가 진료기록의 번역이나 해석청구권도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 판결은 진료기록열람청구권이 있다는 환자의 주장에 대하여 「의사는 환자의 청구가 있을 때 진료경과에 대하여 보고를 하여야 하지만, 그 경우도 환자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진료기록의 모든 기재내용을 고지할 의무까지는 없고, 또한 반드시 진료기록을 제시하면서 보고할 필요는 없다. 의료법상 의사의 진료기록 작성의무는 환자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도 일부 있지만 이러한 취지가 곧 환자의 진료기록열람권까지 보장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하면서 원칙적으로 열람청구권을 부정하였지만, 「의료사고가 전제되었거나 진료기록의 기재 그 자체가 문제된 경우 등 진료기록을 열람하여야 할 구체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의료계약에 근거하여 진료기록 열람청구권에 대하여 무엇인가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진료기록열람청구권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서 인정할 수도 있다고 판시하였다(東京高判昭和 61. 8. 28. 判時 1208호 85쪽). 아직 우리나라의 대부분 병ㆍ의원에서는 환자의 진료기록열람ㆍ복사권을 인정하여 주지 않기 때문에 소송전 증거보전절차를 통하여 진료기록을 열람ㆍ복사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우리와 같이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진료기록의 열람ㆍ복사청구권이 부인되나 환자권리선언을 한 병원을 중심으로 이러한 권리를 인정해주고 있다. 단 어느 견해를 따르더라도 진료기록부 인도청구권은 없다. 왜냐하면 진료기록부의 보관의무가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3. 비밀누설 금지의무의 면제

(1) 피해자의 승락

환자 본인의 승락이 있으면 비밀누설금지의무가 면제된다.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락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첫째 환자 본인에게 승락능력이 있어야 하며 만약 승락능력이 없다면 친권자, 후견인 등에 의한 승락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환자가 승락하면 의료목적에 반하더라도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을 법익이 없다고 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밀누설금지의무는 면제된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비밀누설 금지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2) 공공의 이익

비밀을 지키는 것이 제3자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에 의무가 면제될 것인가?
우선 전염성이 강한 질병의 감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질병을 이환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비밀유지의무가 있는가여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종업원을 검사한 결과 매독에 감염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고용주나 다른 종업원 또는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 되느냐하는 문제가 제시될 수 있다. 이 경우 비밀 보호에 의한 환자의 이익과 다른 사람에의 감염의 위험성을 비교하여 다른 사람의 건강권이 더 크다고 보여지므로 이는 의사의 정당행위로써 면책된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앞서 본바와 같이 의사의 비밀누설금지의무는 일면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타면 공공의 건강유지, 증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이용할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위와 같은 예는 긴급한 경우에 한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염병예방법 제4조, 결핵예방법 제20조 1항에 의하여 의사는 환자를 보건소장, 시도지사 등에게 신고할 의사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바, 의사는 우선 위 관계법률에 의하여 신고를 하여야 하고, 그렇게 되면 관계기관에서 전염병의 확산방지를 위하여 환자를 격리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보건소장 등에게 신고하고도 발설하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그로부터 제3자에 대하여 해를 가할 명백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들은 경우 정신과 의사는 그 비밀을 유지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제3자에나 수사기관에 그 사실을 고지하여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종래에는 논란이 있었으나 1995. 12. 30. 제정된 정신보건법으로 입법적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즉 정신보건법 제 26조(평가입원) 제 1항은 「정신병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 발견한정신과전문의 또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시.도지사에게 당해인의 진단 및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 28조(응급입원) 제 1항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자로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큰 자를 발견한 자는 그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 제24조 내지 제 27조의 규정에 의한 입원을 시킬 수 없는 때에는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얻어 정신의료기관에 당해인에 대한 응급입원을 의뢰할 수 있다」 규정되어 있으므로 의사는 우선 정신질환자를 수용하여 진단을 받게하거나 입원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즉시 제3자에게 고지하여야 한다고 보여진다. 만약 이러한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는 불법행위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3) 평등권에 기한 비밀유지의무와 고지의무
- 이른 바 Tarasoff Principle

정신과의사가 정신병환자를 치료하던 중 어느 특정 개인이나 사회일반에 대하여 심한 적개심을 가지고 모종의 범행을 결의하고 있는 고백을 받은 경우 그 의사는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를 포기하고, 수사기관이나 그 특정인 또는 일반인들에게 알려 범죄의 피해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하는가, 만약 알려주어야 한다면 그 범위는 누구에게까지 알려주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자신이 깊이 사랑하고 있던 애인으로부터의 失戀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심한 정신병,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증상을 일으킨 환자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그 환자로부터 애인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즉 정신질환자가 변심한 애인에 대하여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살인, 유괴 등 애인을 해할 범행계획을 세우고 있으면서 이를 정신과 의사의 치료시에 고백하였다고 하자. 이때 정신과 의사는 이러한 사실을 그 애인이나 수사기관에 알려주어야 하는가? 정신과 의사는 다른과 전문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환자의 사생활을 많이 알아야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정신과 의사에게는 다른과 의사들보다도 더 큰 비밀유지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정신질환자의 심중을 제 3자에게 알린다면 그 정신질환자는 주치의마저 불신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정신질환자를 더이상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특정의 제 3자가 해를 당할 명백하고 구체적인 개연성이 있음에도 비밀유지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알리지 않는다면 당해 범죄의 방조행위가 될 수도 있다. 위와 같이 범행의 개연성이 매우 높을 경우 정신과 의사는 환자가 해를 가하고자 하는 특정의 제 3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보다는 제 3자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제 3자의 이익은 단순히 재산상의 이익이어서는 부족하고, 생명이나 신체상의 위해가 가해질 경우에 한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판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과 공공의 이익과를 비교교량하여 의사의 비밀유지의무의 존부를 논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헌법상의 평등권에 기하여 의사의 비밀유지의무(The Principle of Confidentiality)를 판단하고 있다. 즉 헌법은 약자를 평등하게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에 비밀을 유지해주어야 할 환자가 약자냐 아니면 그 비밀을 알아야할 제3자가 약자인가 여부에 따라 환자의 비밀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가 그 비밀을 피해자인 제3자에게 고지하여야 할 것인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에 관한 사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University of California의 학교 보건소에서 임상심리사(psychotherapist)로부터 치료받던 Paddar라는 남학생이 같은 학교의 여학생인 Tarasoff가 변심하였다면서 그녀를 죽일 계획을 치료중 말했다. 임상심리사는 campus police에게 서면으로 이 사실을 보고하여 Paddar를 72시간 동안 응급정신과에 입원을 시켰으나 compers police는 그가 위험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석방하였다. 임상심리자는 위험성과 범죄 가능성을 구두와 서면으로 재차 신고하였으며, 지방경찰은 그를 잠시 구금한후, Tarasoff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석방하였다. 그후 학교보건소장은 임상심리자의 권고를 무시하고 환자치료에 관계된 기록을 파기시켜 버렸다. 환자는 치료를 받지 않게 되었다. 두달후 Paddar는 계획대로 Tarasoff를 살해하자 그녀의 가족들은 Paddar를 치료한 임상심리사가 속해 있던 캘리포니아대학 이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California Supreme Court는 1976년 이에 대하여 「임상심리사(psychotherapist)는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거나 전문영역의 기준에 따라 그렇다고 판단해야 할 때, 그러한 위험의 목표가 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임상심리사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목표가 되는 희생자 또는 그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자들에게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리고, 경찰에 의뢰하고 또는 그러한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피고로 하여금 배상토록 하였다(Tarasoff v. Regents of University of California, 17Cal3d 425, 131 Cal Rptr 14, 551 P2d 334. 20. 34(1979).)이다.

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의사에게 비밀유지의무를 지운 이유는 무시될 수 없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에 기초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환자가 약자가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제3자가 폭력적인 환자의 잠재적인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고 판시하였다. 만약 제3자가 약자일 경우에는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를 포기하고 이를 제3자인 잠재적 희생자에게 알려야 할 고지의무(a general duty of warn/protect others)가 있다고 하였다. 위 판결은 ① 위험한 환자로부터의 보호대상인 잠재적 희생자는 약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평등권에 근거하여 환자와 마찬가지로 보호 받아야 하고 따라서 그 환자의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② 의사의 비밀유지의무는 치료차원에서 맺는 암묵적인 계약이므로 합리적이고 타당한 경우에만 적용되고, 타인에 대한 危害防止義務에 우선 할 수 없다. ③ 의사 등 전문인들은 그 지위에 상응하여 사회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동반하므로 비밀유지의무와 위해방지를 위한 告知義務를 比較較量하여 행하여야 한다는 이른 바 태라소프 원칙(Tarasoff Principle)이 세워졌다. 태라소프원칙은 의사의 비밀유지의무와 그 의무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자의 범위, 적용영역 등에 관하여 점차 확대되어 갔다(J. F. Monagle, D. C. Thomasma, Health Care Ethics 319쪽 이하, An Aspen Publication, 1994). 1983년 정신질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을 배신한 애인 La Nita를 크게 다치게 하리라는 말을 한 후, 그 말을 실행에 옮겨 어린 아들 Darryl과 함께 있던 La Nita를 총으로 쏘자 La Nita와 Darryl이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제소한 Hedlund v. Superior Court of Orange County사건에서 법원은 「La Nita 뿐아니라 Darryl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것이 예견가능하였다면 정신과 의사로서는 La Nita뿐아니라 Darryl도 예견가능한 희생자였으므로 2명 모두에게 고지하였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환자가 사회전체 혹은 특정직업군 등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경우에 있어서 정신과 의사는 예견불가능한 잠재적 희생자까지를 구별하여 그들 모두에게 고지할 의무는 없다. 미 연방법원(U.S. District Court)은 1980년 Lipari v. Sears Roebuck and Co.사건에서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다른 사람들을 위태롭게 할 합리적 예견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에만 고지할 의무가 있고, 잠재적인 희생자(a potential victim)를 구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4) 증언 거절권과의 관계

의사가 법원에 증인으로 소환되어 환자의 비밀에 관하여 신문을 받아 답변한 경우에 위 의무에 위반되는가? 이 때는 환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비교 교량하여야 할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286조 1항 1호는 「의료인, 약사 기타 법령에 의하여 비밀준수의무가 있는 자가 직무상 비밀사항에 관한 신문을 받을 때에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149조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약종상, 조산원, 간호원에 있는 자가 그 업무상 위탁을 받아서 알게된 사실로서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단 본인의 승락이 있거나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는 원칙으로 환자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하기 위하여 출석을 명 받아도 환자의 비밀누설금지의무를 이유로 출두하지 않아도 되고 또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의사가 증언거절권을 행사하지 않고 환자의 비밀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증언할 경우 국가의 사법작용에 협력하는 행위이므로「정당한 이유」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개인의 사생활보호권과 공공의 이익을 교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의사에게 증언거절권이 인정되고 있고, 그 증언이 공공의 이익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이상 환자의 비밀을 증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비밀누설금지의무위반이라고 생각된다. 환자가 의사의 증언에 동의한 경우에는 비밀누설금지의무가 면제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민사소송법 제318조) 또는 문서송부명령(민사소송법 제323조)에 의하여 환자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도록 명받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보호하여야 하며 당해 명령이 환자의 비밀유지에 반할 때에는 거부하여야 한다.